AI로 광고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고, 카피를 쓰고, 고객의 반응을 분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상세페이지와 광고 소재의 여러 버전을 만들어볼 수 있게 됐는데요.
업무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마음 한 켠엔 또 다른 걱정이 생깁니다. 경쟁사도 같은 도구로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면, 소비자는 무엇을 보고 우리 브랜드를 선택할까요?
『트렌드 코리아 2027』의 슬로건인 ‘알파쉽(Alpha Sheep)’은 이러한 환경에서 생각해볼 만한 화두입니다. 시류와 알고리즘에 휩쓸리기보다 자신의 판단으로 먼저 움직이는 존재가 되자는 의미인데요.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AI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고객을 만나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생산 기술이 평준화 되는 시대, 철학/인문 전공이 다시 인기를 얻고 지식 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시대, 인간의 안목과 경험이 중요해진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 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를 곧바로 “이제 기능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실제 마케팅에서는 조금 더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알파쉽(Alpha Sheep)이란?
알파쉽은 김난도 교수와 공동 저자들이 『트렌드 코리아 2027』에서 제시한 슬로건입니다. 최초와 시작, 앞서는 존재를 의미하는 ‘알파(Alpha)’와 2027년의 띠 동물인 양을 뜻하는 ‘쉽(Sheep)’을 결합한 단어인데요. 양떼처럼 무리를 따라가기보다 자기 생각을 먼저 실행하는 존재가 되자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트렌드코리아 2027 책에 소개된 개념 가운데 오늘 주제와 관련 있는 것은 크게 ‘휴먼엣지’와 ‘안목자본’인데요. AI가 일상적인 도구가 된 환경에서 인간의 감각과 경험, 무엇이 좋은지 판단하는 능력에 관심을 둔 키워드들로서, 휴먼엣지는 AI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경험과 감각, 사람의 손길이 만들어내는 차별적 가치를 뜻하고, 안목자본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무엇이 좋은지 알아보고 선택하는 안목 자체가 경쟁력이자 자산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브랜드 마케팅에 적용해보면,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과 함께 무엇을 선택하고 왜 선택했는지를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고 소개 100개를 만드는 일과 그중 우리 타겟에게 핏한 1개를 잘 골라내는 일은 다릅니다. 좋은 문장처럼 보이는 카피라도 제품이 실제로 제공하는 가치와 맞지 않으면 구매 이후의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죠. 제작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무엇을 내보낼지 판단하는 기준도 필요해집니다.
2. 알파쉽 시대, 브랜드가 보여줘야 하는 것
브랜드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라고 하면 창업자의 철학이나 장인의 오랜 경력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에 극적인 창업 계기나 수십 년의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닐텐데요. 그래서 이제 막 시작한 브랜드라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린 구체적인 선택부터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상의 보습 제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보습 성분을 함유했다’는 설명은 제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입니다. 여기에 ‘왜 이런 사용감을 구현하려 했는가’라는 질문을 더해보는 거죠.
잠들기 전에 바르는 제품이라면 보습력 외에도 베개에 묻는 느낌이나 끈적임이 신경 쓰일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실제로 이 문제를 발견하고 제형을 조정했다면, 그 과정은 고객에게 제품의 개발 의도를 설명하는 근거가 됩니다.
‘고객의 일상을 생각합니다’라는 말만으로는 어떤 일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어떤 불편을 발견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바꿨는지가 드러나면 고객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의 관점은 실제 선택에서 드러납니다. 무엇을 넣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빼기로 했는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어떤 부분을 유지했는지에 그 브랜드의 기준이 담깁니다.
그렇다고 모든 제품을 프리미엄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포장이나 옵션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선택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타깃 고객의 필요와 연결되고, 실제 제품 경험으로 확인되는지가 중요합니다.
3. 그렇다고 모든 소비자가 스토리를 사는 것은 아니다
저는 향후 브랜드를 선택하는 기준이 두 방향으로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필요한 기능을 합리적인 가격에 빠르게 구매하려는 소비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쓰는 소비입니다.
AI로 콘텐츠를 만들고 접하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누가 어떤 생각으로 제품을 만들었는지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소비자가 생길 것입니다. 비슷한 이미지와 메시지 사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관점과 개성을 찾는 거죠. 이런 고객에게는 제품의 기능에 더해 제작 과정과 선택의 이유까지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기능과 가격, 편의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장도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세제를 구매할 때 세척력과 용량, 가격, 배송일을 확인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요. 이때는 제품이 자신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해주는지가 구매를 이끄는 이유가 됩니다.
디지털 마케팅에서도 이 두 흐름에 맞춰 접근해야 합니다. 브랜드의 취향과 철학을 깊이 전달하는 콘텐츠가 필요한 시장이 있고, 제품의 효용을 빠르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광고가 효과적인 시장이 있습니다.
후자의 시장에서는 AI를 활용한 광고 제작이 실용적인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제품의 장점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고 구매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면, AI로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활용을 주저할 필요는 없겠죠. 여러 소구점과 표현을 빠르게 시도하면서 고객이 반응하는 메시지를 찾아가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고요.
그래서 브랜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트렌드의 방향과 현재 고객의 구매 이유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인간의 안목과 스토리가 중요해진다는 전망에 공감하더라도, 지금 우리 고객이 기능과 가격에 반응하고 있다면 그 수요부터 충실하게 공략해야 합니다.
우리 제품을 처음 구매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후에도 이 브랜드를 선택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구분해보면 좋겠습니다. 당장의 구매를 이끄는 메시지를 찾으면서, 계속 선택받을 이유를 쌓아가는 것. 저는 이 두 가지를 함께 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브랜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4. 브랜드의 서사는 운영하면서 쌓인다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과제가 생깁니다. 제품도 팔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브랜드 이야기까지 준비해야 하니까요.
다만, 저는 브랜드의 서사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불편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나, 이런 제품이면 팔릴 것 같다는 판단에서 출발할 수도 있죠.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고객이 예상과 다른 부분을 좋아하기도 하고, 자신 있게 준비한 기능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복되는 불만을 해결하려고 제품을 수정하고, 비용과 품질 사이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하죠.
앞서 예로 든 보습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보습력을 중심으로 판매했는데, 고객들이 사용감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의견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하고, 어떤 점을 바꿨는지 설명한다면 브랜드가 고객의 생활을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은 처음부터 ‘인간적인 브랜드로 보이기 위해’ 기획한 장면이 아니라, 제품을 더 잘 만들고 고객을 만족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생겨난 이야기입니다. 그 자체가 창업자와 팀의 서사이자, 브랜드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얘기할 수 있죠.
물론 열심히 운영한다고 그 과정이 저절로 고객에게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반복해서 지켜온 기준을 정립하고, 그 기준이 드러나는 일을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고객의 의견 때문에 달라진 부분, 여러 선택지 가운데 특정 방식을 택한 이유, 시행착오를 거쳐 개선한 결과가 콘텐츠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하지 않은 고민이나 과정을 덧붙일 이유는 없습니다. 작은 변화라도 제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5. 초기 시장 공략에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경험을 중시하는 브랜드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초기에는 어떤 고객이 어떤 이유로 구매하는지 확인하는 일이 시급하죠. 제품의 장점이 여러 개라면 무엇을 먼저 전달할지 가설을 세우고, 이를 광고 소재로 구현해 반응을 살펴야 합니다. 보습 제품이라면 보습력, 산뜻한 사용감, 간편한 사용 방식 중 어떤 설명이 고객의 관심을 끄는지 비교해볼 수 있겠죠.
AI는 이 과정에서 카피와 이미지의 초안을 만들고, 여러 표현을 탐색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고객 리뷰와 문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반복되는 질문을 찾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다만 광고 소재를 많이 만드는 것만으로 시장을 더 잘 공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이야기를 문장만 바꿔 반복했다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제한적입니다. 어떤 구매 이유를 검증하려는지 정하고, 결과를 보고 다음 가설을 세워야 하겠죠.
성과를 해석할 때도 클릭이나 구매 전환율 만으로 판단을 끝내기보다 구매 이후의 반응(리뷰, 댓글 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심을 끈 메시지가 실제 제품 경험과 일치했는지, 고객이 만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확인해야 다음 광고와 제품 개선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AI는 이 일을 더 빠르게 시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반응을 중요하게 볼지, 무엇을 개선할지, 끝까지 유지할 기준은 무엇인지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이 결정해야 하겠죠.
2027년 마케팅을 준비하면서 거창한 브랜드 스토리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 가볍게 시작하는 서을 추천드립니다. 지금 고객이 우리 제품을 사는 이유를 확인하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불편을 찾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AI와 함께 더 빠르게 해나가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는 남겨두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브랜드를 설명해줄 이야기는 그 안에 있을 테니까요.